나의 신앙유산답사기(순천편1)

순천선교기지 구축

편집인 | 입력 : 2020/10/02 [16:48] | 조회수: 78

순천의 지명과 의미

 

순천지역의 지명과 연혁은 삼국사기에서 시작되고 삽평, 승평, 승주로 일컬어지다가 1310년 순천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불려졌다. 순천은 전남동부지역에서 우측으로는 경상도를 잇고 좌측으로는 전남 내륙을 잇고, 남쪽으로는 여수를 잇는 전남동부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선교사들도 전주, 군산, 목포, 광주스테이션을 세우면서 순천스테이션을 세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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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은 호남선교의 마지막 스테이션으로서 가장 성공적인 스테이션 중의 하나였다. 그만큼 하나님도 기뻐하는 스테이션이 이었다. 순천이라는 명칭도 하늘의 소리를 듣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맹자께서  順天者存逆天者亡(순천자존역천자망)이라고 했다. 즉 천리에 순종하는 자는 번영과 생존을 누리고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뜻이다. 순천은 천리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순천은 선교사들을 통하여 천리에 순응하였다.

 

순천은 선교사들을 통하여  기독교가 전파되고, 근대교육기관과  병원이 설립되고, 철도가 부설되면서 광양, 구례, 여수, 고흥, 보성까지 아우르는 전남동부지역의 교통과 교육 등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순천은  세계적인 연안 자연습지 공원으로 철새들의 낙원으로 알려지고 있고, 근대문명의 자취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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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을 방문한 외국인들

 

순천을 처음 방문했던 외국인은 네덜란드인 하멜이었다. 하멜은 한국에 14년 머물면서 그 경험을 통하여 본국에 가서 하멜표류기를 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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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효종 4) 네덜란드의 무역선 스페로 호크(Sparrow Hawk)호가 심한 풍랑으로 난파되어 선원 64명 중 36명이 중상을 입은 채 제주도 산방산(山房山) 앞 바다에 상륙했다.

 

그들은 체포되어 13년 28일 동안 억류되었다가 8명이 탈출해 귀국했는데, 귀국선의 서기인 하멜이 한국에서 억류 생활을 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사실을 기록한 책이 하멜표류기이다.  

 

64명의 선원 가운데 28명은 익사하고, 육지에 오른 생존자 36명은 서울로 호송되었다. 서울에서 2년 동안 억류 생활을 하다가 1656년 3월 전라도로 옮겨졌다. 그동안 14명이 죽고, 다시 1663년 생존자 22명은 여수·남원·순천으로 분산, 수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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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순천을 처음 방문한 선교사는 1894년 4월 레이놀즈와 드류선교사였다. 그 이후 1897년 테이트 선교사와 오웬 선교사, 프레스톤 선교사가 방문하였다. 

 

순천스테이션의 구축

 

순천선교기지는 전주, 군산, 목포, 광주의 시행착오를 반영하여 이전 선교기지의 다양한 경험을 마스터플랜에 반영하였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서구식으로 하여 한국의 취락 구조나 도시 질서 체계와는 다르게 구축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전쟁으로 인해 많이 소실되었으니 일부 건축물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전근대식의 건축이 아니라 근대식 건축을 하였다.    

 

입지조건도 이전의 경험을 반영하여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곳에 설립하였다. 그러면서도 일방적 서구식이 아니라 한국 건축의 권위적 위상 또는 종교적 상징성과 연계할 수 있는 대지 조건 등이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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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10년 설립이 결정된 순천선교기지는 활동지역이 순천시, 여수시, 광양시, 보성군, 곡성군, 구례군 그리고 경상남도의 하동군과 남해군까지 이르렀고, 스테이션(선교기지) 면적은 조선시대 전통 도시 공간인 순천읍성의 규모와 유사했다. 그리고 한국인의 관심을 이끌었던 선교 건축은 선교 관계자들의 주거 건축에도 반영되었다. 선교의 수단으로 시작된 교육과 의료 분야는 1930년대 도시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소개될 만큼 도시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컸다. 그러므로 순천 스테이션은 가장 마지막에 설립된 것으로 가장 완성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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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순천 스테이션의 제안은  1904년 전킨 선교사의 발의가 있었고, 1910년에는 니스벳, 프레스톤, 윌슨 등의 선교사들이 선교사 위원회를 조직하여 선교부의 타당성 여부를 조사하였다. 벌교와 순천이 거론되었으나 장래 순천이 교통의 중심지가 될 것을 고려 순천스테이션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순천스테이션은 1910년에 공사가 들어가 1912년에 주택이 완성되어 선교사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스테이션 건립이전부터 목포에서 유진벨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여럿이 있어서 1907년 4월에  순천교회가 자생적으로 설립되었고, 그해 프레스톤이 당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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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교회

 

알렉산더 병원(1914년 화재로 소실)

 

 

현대판 순천스테이션

 

순천 스테이션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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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스톤 선교사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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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중앙교회


당시 1912년 보고서에 의하면 12,000평의 땅을 2,000달러에도 못미치게 구입을 하였고, 얼마 지나서 6,000달 이상 지가가 상승하였다. 1912년부터 건축이 진행되었다. 순천스테이션은 선교사들의 주택과 교육, 병원시설 등이 10여년에 걸쳐서 20여동이 건축되었고 전주, 군산, 목포, 광주와 달리 종합계획안을 갖고서 착수하게 되었다. 

 

순천 스테이션이 개설되면서 프레스촌과 코잇 선교사의 상주에 이어 프레트, 리딩햄, 비거, 듀푸이, 그리어, 티몬스 선교사 부부가 합류한다. 

 

  코잇 가옥

 

 프레스톤 가옥

 

이로써 순천스테이션은 여수, 고흥, 보성, 구례, 곡성, 광양, 여수까지 선교구역으로 삼게 되었다.  순천 선교에 앞장선 선교사는 프레스톤과 코빗이었다.   

 

 

 

 

http://kidogkongbo.com/2395  (전남편)

 

http://kidogkongbo.com/2436 (목포편1) 

 

http://kidogkongbo.com/2438 (목포편2)

 

http://kidogkongbo.com/2446 (목포편3)

 

http://www.kidogkongbo.com/2448 (목표편4)   

  

http://kidogkongbo.com/2488 (신안편1)

 

http://www.kidogkongbo.com/2489 (신안편2)

 

http://www.kidogkongbo.com/2491 (신안편3) 

 

http://www.kidogkongbo.com/2493 (순천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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