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유산답사기(안동편)

유교와 불교 민속, 기독교가 아우러진 도시

편집인 | 입력 : 2021/04/19 [13:51] | 조회수: 79

안동시 

 

안동시(安東市)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중북부에 있는 도시이자, 경상북도청 소재지이다. 고려·조선시대에는 안동대도호부가 존재했다. 특히 가장 보수적인 도시로서 유교 문화의 고장으로 유명하며,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한다. 하회마을, 도산서원 등 명소가 있고, 많은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다.

 

안동은 지리적으로 태백산맥의 지맥이면서 낙동강이 흐르는 비옥한 지역이다. 낙동강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다가 시가지 동쪽에서 반변천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관통하여 흐르고 있다.

 

산과 강, 문화가 아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곳이며, 조선의 전통과 민속의 향내가 물씬 나는 곳이기도 하다. 

 

낙동강을 경계로 서쪽 지역은 비교적 평탄하나 동쪽 지역은 산이 험준하여 농경지는 거의가 산간에 위치하며, 풍산읍 · 풍천면 일원의 풍산평야를 제외하고는 평야가 극히 적은 편이다. 낙동강 남쪽은 점토질이고, 낙동강 북쪽은 사토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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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중심도시인 안동은 동쪽으로 영양군,청송군, 서쪽으로 예천군, 남쪽으로 의성군, 북쪽으로 영주시, 봉화군과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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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 예천군, 봉화군, 의성군, 영양군, 청송군은 안동의 주변도시로서 예로부터 안동 문화권으로 분류되어 왔으며, 현재도 통근 및 통학권에 속하는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같은 상권에 속해있다.

정신문화적으로 안동은 퇴계 이황의 고향으로서 성리학이 꽃을 피운 곳으로 조선 최고의 지성을 자랑했고, 성리학의 산실인 서원문화가 발달한 곳이었다. 

 

도산서원

 

 병산서원

 

이퇴계의 후학들이 조정에 들어가면서 안동은 자동적으로 조선정신문화의 산실이 되었다.  안동은 유교와 불교, 민속이 어우러진 곳이다.

 

유학은 이황, 유성룡, 김성일 등을 통하여 발전했고, 불교는 봉정사와 같은 사찰을 통할여 발전했다. 봉정사(鳳停寺)는 신라 시대인 672년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스님이 천등산에 창건한 사찰로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국보 제15호인 봉정사 극락전, 국보 제311호 봉정사 대웅전이 있다.

 

  봉정사 극락전

 

대웅전

 

안동은 유교와 불교이외에도 민속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하회마을과 하회별신굿탈놀이·차전놀이·성주풀이 등으로 대표되는 민속이 어우러진 문화 기풍을 보여주며 조선 시대에는 남인 계열의 한 기둥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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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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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은 안향으로부터 일찌기 들여온 성리학의 영향과 걸출한 유학스타 이퇴계의 영향으로 조선 시대에 안동에서 배출한 인물이 가장 많았다. 

 

이천, 이현보, 이황, 류성룡, 김성일 같은 유학자가 있었고, 현대에는  이상룡·이육사 같은 독립운동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인물이 다수 출현하였다.

 

영남인물고

 

체제공은 정조에게 건의하여 1798년 [영남인물고]를 집필한다. 안동편은 채홍원, 정약전, 이유수, 한치응이 편찬하고, 상주편은 목만중, 심규로, 예안, 군위, 영양편은 윤필병, 이정운이 편찬한다.  

 

정조의 치세 동안 채제공(蔡濟恭)을 비롯한 남인이 등용되자 남인의 본거지인 영남이 정조의 관심 대상이 되었고, 남인들의 진출을 기도했던 채제공이 영남의 인물을 소개하기 위해 몇몇 남인계 문신들로 하여금 공동 집필하게 한 것이다.

 

  영남인물고

 

이상에 수록된 인물은 총 541인이며 읍별로 통계하면 다음과 같다. 안동 141, 상주 78, 예안 37, 군위 9, 영양 1, 경주 33, 밀양 19, 신령 3, 성주 35, 의성 20, 진주 42, 함양 10, 자인 4, 영천(永川) 30, 대구 25, 영천(榮川) 38, 용궁 14, 하양 2, 진보 2인 등 이다. 안동에 인물들이 가장 많이 있다.

 

다산 정약용은 정약전이 편찬한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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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위대하지않은가? 불과 수백년동안에 한 지방의 어진이기 이처럼 많은 것이 위대하지 않은가? 행실이 단정하여 믿음이 가고 덕성과 신의가 높아 명사로서 뚜렷한 자취를 남긴 자가 이처럼 혁혁하단 말인가? 그대는 그러한 까닭을 아는가? 가르침의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남은 향교나 서원을 가숙(家叔)으로 알고 스승과 벗을 친척으로 여겨 더불어 배우고 익혀 왔으니, 바탕이 참으로 좋다면 어찌 성취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사람은 가르침이 없어서는 아니된다."  (이도국, 영남좌도, 역사산책 38-9)

 

영남의 인물들

 

조선시대뿐만아니라 개신교가 들어온 이후 영남에는 많은 훌륭한 종교인, 경제인, 과학자, 문인이 탄생했다. 교회가 세워진 이후 현대에도 교계나 학계, 정치계 등 많은 인물이 영남에서 배출되었다. 최근 국무총리가 된 김부겸도 상주출신이다.  

 

문학계는 안동출신인 이육사가 대표적이며, 종교계는, 이원영, 김광현, 손양원, 주기철, 한상동, 이성헌, 이상근, 김삼환, 김진홍, 조용기, 정성구, 김수환 등이 영남출신이다. 

 

성서주석학자 이상근박사는 대구출신이고, 세계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를 이룬 김삼환목사는 영양출신이며, 남양만의 기적을 창출한 김진홍목사는 청송출신이다. 

 

장신대 학장을 지낸 이종성 학장은 의성, 프린스톤 이상현박사는 상주출신이고, 칼빈신학자 정성구박사는 안동출신이다.

 

예장통합교단의 총회장과 한기총에서 대표회장을 지낸 이광선목사는 영덕 출신이고, 예일대 박사학위소지자 전성천박사와 총회장을 지낸 김윤식목사는 예천출신이고, 박정희대통령은 구미출신이고,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이자 한동대총장을 지낸 김영길박사는 안동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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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명예교수인 법사상가 최종고 교수는 상주출신이다. 경제가이자 사업가인 박태준, 구본홍, 이병철 모두 영남출신이다. 예나 지금이나 조선시대부터 한국의 근현대사까지 영남출신들이 인물이 많이 있다. 최근에 서울대 출신들이 한국의 경제계와 법조계, 정계를 주름잡는 것처럼 학문이 있는 곳에 인물이 출생하는 법이다.

 

교육도시, 안동

 

당시 안동은 우리나라의 서울대, 연고대와 같은 도산서원, 병산서원등이 있었기 때문에 안동은 최고의 교육도시였다. 도선서원의 문하생들이 문경세재를 넘어서 과거를 보기 위하여 한양으로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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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공부에 몰두한 서원출신자들중에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미 선교사들이 들어오기도 전에 안동은 지적으로 준비된 도시였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퇴계의 14대 손인 이원영목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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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선교사들이 동양철학의 형이상학적인 이와 기대신에 이와 기의 원천인 하나님을 전하면서 기의 실현처럼 실천에 옮기자 복음이 민중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던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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