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vs. 서울교회

장신대 교수들과 박노철목사의 적반하장

이정환 | 입력 : 2018/01/27 [08:05] | 조회수: 3343

▲     © 기독공보

 

명성교회와 서울교회의 공통점

 

작금에 우리 예장통합 교단 내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교회가 있다면 명성교회와 서울교회일 것이다. 두 교회가 가진 공통점은 직간접으로 교단 재판국에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과 전임 목회자가 은퇴하고 후임 목회자를 세운 후 교회 안팍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두 교회 모두 전임목회자들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들로써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한 교회라는 점이다. 명성교회는 누구나 다 아는 바대로 국내외적으로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를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고 있고 서울교회 또한 이런 선교사역 뿐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복음적인 교회개혁과 갱신을 위해서 헌신함으로 한국교회에 봉사해 왔다는 점이다.

 

혈연승계 vs. 비혈연승계

 

이렇게 공통점도 있지만 서로 다른 점도 여러 가지다. 첫째로 명성교회는 안정적인 교회사역을 위하여 아들을 후임 목회자로 청빙하였다는 점이며, 서울교회는 비혈연관계자를 후임으로 청빙한 점이다. 그리고 둘째로 명성교회는 비록 교회 안팍으로부터 아들을 후임자로 청빙했다는 비판과 비난을 받았지만 그러나 현재까지는 연착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하여 서울교회는 후임목사에 의해 전임목사가 노회에서 ‘출교’까지 당한 가운데 교회가 분열 상태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시저의 암살’처럼 자신이 믿고 데려온 후임자에게 전임자가 등 뒤에 칼을 맞은 꼴이 된 것이다. 두 교회를 비교하여 드러난 결론은 최소한 “자식은 부모를 배반하지는 않는다” 는 점이다. 평생을 살면서 가장 가슴 아픈 것 중의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특별히 자식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이 평정된 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병상에서 최후를 맡는다. 많은 자식들 중에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배신으로 받은 충격과 고통은 다윗의 심신을 무너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울교회에 대한 침묵과 명성교회에 대한 이해

 

명성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서울교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서울교회가 명성교회에 비해서 규모가 작기 때문에 별것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서울교회가 비혈연자에게 교회를 물려주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법적인 문제가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서울교회는 특별한 경우라고 치부하는 것인가? 아무리 명성교회를 비난하고 비판할지라도 서울교회를 보면서 명성교회를 이해하려는 모습을 한 번쯤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서울교회의 고비

 

지금 서울교회는 교회개척 이래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다. 충현교회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이종윤목사가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자신을 따라 나선 100여명 교인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하여 우리 통합교단에 가입하고 지난 30여 년간 알뜰하게 가꾸어 2000여 명에 이르는 중대형교회로 성장시킨 교회이다. 이렇게 전임자의 눈물과 헌신과 희생으로 세워진 교회가 후임자 한 사람이 잘못 들어옴으로 교회가 분열되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서울교회 문제에 대하여 책임을 질 것인가? 사람들은 말한다. “교회가 목사를 청빙했으니 교회가 알아서 해야지 누구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이냐?” 맞는 말이다.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잘되든지 못되든지 결국 책임은 그 구성원인 교인들에게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이 없고 해 교회 교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개 교회 문제에 개입하면 안 된다. 그 교회가 알아서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한 것은 존중까지는 못하더라도 인정은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리가 분명(?)한 사람들이 왜 명성교회에 대해서는 비난과 비판을 해 대는 것인가? “공교회성을 해쳤기 때문”이라고(?)

 

장신대 교수들의 적반하장

 

명성교회를 비난하는 장신대 교수들에게 먼저 문제를 던지고 싶다. 명성교회가 공교회성을 해친다고 하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인들이 흩어지게 만드는 것은 공교회성을 해치는 일이 아닌가? 당신들이 말하는 공교회성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를 지키는 일이다. 교회가 분열되고 망가진 다음에 공교회성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집도 절도 없는데 뭘 하겠다는 것인가? 집이라도 있어야 비바람과 추위를 피하고 쉼을 얻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목적이 좋으니 절차야 어떻든 상관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집을 흔들어대면 집이 무너진다. 집이 무너진 다음에는 아무리 좋은 명분도 법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교회지도자가 되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목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며 교회다.

 

장신대 교수들, 교회 흔들지 말아야

 

교회는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지난 해 예장 통합에 소속된 세례교인 숫자가 5만 8천여 명 감소했다. 100명 이상 자립교회 500 개 교회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예장 통합 소속 목사 500 명이 지난 해 일자리를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재작년에도 5만 여명이 감소했다. 숫자적으로 보면 1년에 500명 씩 목사들이 실직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한국교회 전체 기독교인들이 평균적으로 해마다 약 15만 명에서 20만 명씩 감소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30년 후에는 한국교회는 현재의 1/4에서 1/5 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신학교 수도, 교수 자리도 같은 비례로 감소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너진 교회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데 무엇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교회를 흔들어대는 것인가?

 

박노철목사의 청빙은 처음부터 불법

 

 

서울교회 박노철목사는 미국 보수 신학계열인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출신으로 당시 캐나다 영주권을 소지한 채 예장 합동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 침례교단인 지구촌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다가 교회를 개척하던 중 서울교회 동사목사로 부임하였다가 청목과정을 이수한 후 서울교회 담임으로 부임한 사람이다.

 

박노철 목사의 청빙은 처음부터 모두 불법이었다. 첫째는, 우리 교단 목사도 아닌 사람을 전도목사로 청빙 허락한 것도 불법이요, 전도목사를 서울교회 (부목사)에 보낸 것도 불법이요(전도목사는 담임할 수가 없다), 장신대가 부목사를 청목으로 받은 것도 불법이요, 청목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총회목사고시에 응시한 것도 불법이요, 청목과정 미 이수자 상태에서 무자격자가 합격한 필답고사를 합격처리 한 것도 불법이며( 총회 목사고시 조례 위반), 이런 무자격자를 서울교회 담임목사로 파송한 것도 불법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불법을 행하는 과정에서 박노철 목사를 신뢰하고 청빙한 서울교회 교인들과 그를 추천한 노회를 기만하고 허위 이력서를 작성한 박노철 목사 자신의 능동적인 범죄는 공동체의 신뢰를 깨뜨리고 다른 목회자들의 품위까지 손상시킨 아주 잘못된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부임 당시 캐나다 영주권도 포기하지 않아

 

또한 서울교회 부임 당시에도 캐나다 영주권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외 영주권 소지자는 청빙할 수 없다”는 총회의 결의도 무시하고 교회나 노회, 심지어 총회까지 불법적인 목사청빙에 협조한 것이다. 이러니 교단과 노회가 욕을 먹는 것이다. 모범이 되어야 할 총회나 노회 지도자들이 불법을 눈감고 자기 마음대로 전횡을 하니 ‘교단의 목사나 장로나 교인들이 “죄를 짓는 일에 담대해 지는 것”이다. 결국 이런 불법들이 부메랑이 되어서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고 하였는데 모두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 같다.

 

문제는 불법을 한 것까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으니 부임한 후에 목회를 잘하면 무슨 잡음이 일어나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사필귀정이라는 사실을 쉽게 간과하는 것 같다. 불법을 한 사람들은 반드시 같은 불법을 되풀이 하고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과가 쌓여 갈수록 수렁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목사들이 들으면 서운해 하겠지만 교회마다 발생하는 문제들의 원인은 대부분 목사들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분쟁이 일어난 교회들을 보면 대부분 목사들이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문제를 일으켜 교회를 고통 속에 빠뜨리고 결국에는 금전을 챙기고 교회를 떠난다. 순진한 성도들이 교회에 대한 비판 언론과 송사에 시달리며 교회의 장래를 염려하여 고육지책으로 금전적으로 합의를 해서 목사를 보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불법적이고 반 신앙적인 예들을 보면서 목사나 교인들에게 학습효과 나타나 의례 것 분규가 발생하면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배반은 능력 있는 자들의 특권

 

그런데 정말 속상하고 화가 치미는 것은 박노철 목사의 부도덕한 행위이다. 한 사회학자는 현대사회를 가리켜 ‘배반의 시대’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배반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배반이 능력 있는 자들의 특권이며 능력의 증거”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사회를 영리하게 살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애당초 배반의 가능성이 없다. 능력 없는 사람은 배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배반자들은 자신들이 부정을 고발하다가 희생된 피해자이며 결국은 자신의 정의가 밝혀질 것이라고 역사를 들먹인다. 배신과 변절을 크나큰 수치로 여겼던 과거의 순수함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 되었고 교회와 목사들까지 이런 세속에 오염되어 자신의 수치를 모른다. 그리고 인간적 신뢰를 배신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정의를 위해서 교회공통체가 깨어지는 것이나 인간적 서운함은 감수해야할 대가라고 자신을 정당화 하는 것이다.

 

 빚을 갚지는 못할지라도 은혜는 잊지 말아야

 

박노철 목사를 서울교회 후임자로 추천한 사람은 이종윤목사이다. 그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의 후임자를 물색하면서 교회와 후임자가 교회의 새로운 도약과 발전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춧돌을 놓은 복음주의 활동을 이어가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자신과 신학적 뿌리가 같은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출신인 박노철 목사를 추천했다. 더구나 박노철 목사가 합동측 충현교회에 부목사로 시무하다가 ‘쫓겨났다’는 말을 듣고 동병상련으로 연민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박노철 목사는 이종윤 목사에게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빚을 갚지는 못할지라도 은혜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아마 박노철 목사도 처음에는 이종윤목사의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노철 목사에 대한 이종윤목사의 기대는 무너졌다. 박노철 목사 설교가 문제가 된 것이다. 박노철 목사 설교표절 문제가 교회 내에서 회자되면서 교회는 시험에 들기 시작하였다. 실수나 잘못은 빨리 인정하고 고치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목사들이 별로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박노철목사의 적반하장

 

박노철 목사 역시 보통 목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설교표절 문제가 불거지자 이종윤 목사를 물고 늘어졌다. “원로목사도 설교 표절을 했다”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시저의 등에 칼을 꽃은 부루투스와 다름없는 행위와 다름없는 짓이다. 이종윤 목사 설교 표절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한 마디로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다. 세상은 이것을 배신, 배반이라고 부른다. 이미 은퇴한 원로목사가 표절을 했던 안 했던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박노철 목사 자신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서 원로 목사를 물고 늘어진 것이다.

 

“부모를 거역하고 무정하며 자식이 아비를 죽는데 내어주고 자기 배를 하나님으로 삼는” 종말의 징조가 교회 안에서. 그것도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에게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종윤목사의 은혜를 배반하고 그를 배신함으로 자신의 이익과 입지를 지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뿐 아니라 교회의 중심적 위치에 있는 장로들과 원로목사를 재정부정으로 검찰과 경찰국세청에 고소하고 고발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자신이 지난 5년 동안 시무하면서 행한 적법하지 못한 교회재정 지출을 원로목사도 그렇게 했으리라고 짐작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노철 목사의 예상은 빗나갔다.

 

검찰, 박노철목사 사기죄로 기소 

 

서울교회 장로들도, 원로목사도 교회재정 사용에 대하여 깨끗함이 검찰과 국세청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고 모두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오히려 오정수 장로 같은 이는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자신의 사비를 들여서 교회건축을 마무리한 사실이 조사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박노철 목사의 교회재정 불법사용은 인정되어 ‘사기와 업무상배임죄’로 수백만 원의 벌금형에 약식 기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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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 목사고시, 이력서의 공통점은 사기 혹은 허위   

 

박노철 목사는 서울교회에 청빙을 받은 처음부터 이런 부도덕한 행위를 상습적으로 행한 사람임이 드러났다고 할 수가 있다. 총신대 신대원 M.Div 과정을 졸업한 사실이 없음에도 이력서 상에 허위학력을 기재하고, 장신대 청목과정을 이수하지 않아 목사고시에 응시하는 것이 불법임에도 양심적인 거리낌이 조금도 없이 목사고시를 치르고 캐나다 영주권을 가진 채 목사임직 서약을 하는 등 사기성이 몸에 밴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나는 몰랐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행한 모든 불법과 부정을 “나는 몰랐다. 원로목사와 노회가 시키는 대로 그렇게 한 것뿐이다”라고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죄 없는 장로들을 무고하고 은인이나 다름없는 원로 이종윤 목사 등 뒤에 칼을 꽂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자행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마치 희생양이나 된 것처럼 박노철 목사를 지지하고 교회분열을 시도하는 서울교회 일부 교인들이다. 자신들에게는 영적 스승이요 아비나 다름없는, 자신들을 믿음으로 키워준 원로목사를 저버리고 자신이 행한 불법과 부정 때문에 불신을 받고 있는 사람을 마치 의인처럼, 개혁의 일꾼처럼 교회를 향해서 주먹을 흔들며 시위하는 일부 교인들의 행위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교회를 찢는 일은 범죄 중의 범죄

 

이들의 행위는 자신들을 애굽 노예에서 구원해 준 모세를 향해 ‘너만 하나님의 일꾼이냐, 나도 하나님의 일꾼이다’라고 소리치며 모세를 배신한 고라를 따른 3천명의 무리들과 다름없어 보인다. 이들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왜 비참한 결과가 찾아오기 까지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교회를 찢는 일은 범죄 중의 범죄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 교회가 분열되고 찢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바울사도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전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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